올겨울은 배구로 보냈다. 작년 11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고 있던 차에 배구가 눈에 들어왔다. 장충체육관으로 GS칼텍스 경기를 보러 갔다. 처음 간 직관이라 큰 기대는 없었다. 초반엔 쭈뼛쭈뼛하며 경기를 봤다. 응원도 하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며 점점 커지는 주변의 박수와 함성에 맞춰 응원을 함께 했다. 그날 GS는 세트스코어 3대0으로 이겼다. 오랜만에 신나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종종 직관을 간다. 경기에서 가장 열광하게 되는 순간은 스파이크로 점수를 낼 때다. 선수들이 상대 코트에 시원하게 공을 내리꽂아 내면
한 줄에 전부 담아라, 그러면 ‘전천후 제목’“꿈에 그리던 무대를 12년 만에 올랐네요. 편집기자가 기록을 남기는 직업인데, 저는 제목이 사라지는 온라인에서 일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저의 제목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월 24일, 이달의 편집상 시상식에서 온라인 편집상을 받은 경인일보 연주훈 차장의 인상적인 수상 소감은 온라인에서 보낸 지난 5년의 내 삶도 돌아보게 만들었다.거의 18년을 ‘신문쟁이’로 살던 내게 ‘온라인 파견명령’이 떨어진 것은 2019년의 폭염이 슬슬 시동을 걸던 7월 초의 일이었다. 사실, 그때로
글 읽는 일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여러 종류의 글 읽기를 즐겼다. 그중 신문은 내게 언제 만나도 즐거운 벗과 같다. 평범한 하루도 신문을 읽고 나면 특별하게 느껴진다. 신문을 통해 보는 세상이 좋았다. 오래전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앞에 배달 온 신문 먼저 챙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진한 잉크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읽는다. 1면부터 끝까지 빠르게 한 번 읽은 뒤 다시 처음부터 읽는다. 기억에 남는 지면은 스크랩한다. 집을 나설 때도 신문을 꼭 챙긴다. 신문은 나를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쓰게 하
누군가 “날씨도 험한데, 산에 가게?”라고 묻는다. 겉으론 그냥 “응.” 하면서도 속이 시끌시끌하다. 날씨는 날마다 바뀌어도 산도 그대로고 내 속도 그대로다. 동장군이 무슨 야단을 떨든지 나는 산과 함께 고요하다. 시름을 잊는다고들 하지. 이야, 제법 등산꾼 같은 소리도 술술이다. 내가 등산에 빠지게 된 건 이번 여름, 제주도 순례길을 걷고 난 이후다. 이틀간 36km 정도를 걸었다. 하루 18km를 걸어본 건 처음이었다. 빡세데. 그래도 무식하게 걷지 않았기 때문에 트레킹이니 하이킹이니 하는 것들이 순순히 좋아졌다. 걷는 게 좋아
몆 주 전인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를 찾지 못한 스튜디오 지브리가 민영방송사 산하로 들어간다는 기사를 읽었다. 곧바로 며칠 전 보았던 그의 작품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떠올랐는데, 하야오 감독의 그런 상황과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장 감독의 삶(작품인생, 작품세상)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는 동시에 체념 또한 느껴졌다. 그리고 삶과 사람과 시간은 언제나 연결되고 이어진다는(파스타 가락처럼) 희망까지도.보통 인간이 죽은 뒤 10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올 여름은 무더웠고 비가 많이 내렸다. 날씨 소식들이 잘 팔려나갔다.2023년 8월 24일 오후, 쏟아지는 예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기사가 출고되었다. 이라는 제목이었다. 츄리닝을 무릎까지 걷고 회색 민소매를 입은 한 아저씨가 대문짝만 하게 찍혀있었다. 충청북도 청주시 한 오거리, 침수된 도로의 배수로를 뚫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사의 요지는 이 사람이 사실 현직 도의원이었다는 데 있었다.수상한 냄새가 났다. 출처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키워드를 따라 들어가 보니 원문에는 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간 놀이동산. 저는 좀 무서웠습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동물인형, 귀가 찢어질 듯한 장내 스피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꼭 잡은 부모님의 축축한 손, 놀이기구 타는 법을 무표정하게 읊는 직원들….최근 개봉한 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를 관람하다 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더군요. 80년대 레트로풍 배경에 인상 푸근한(?) 괴물들의 조합이 유년 시절의 공포를 다시 불렀기 때문일까요. 이 영화는 티저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자 하루만에 인기 급상승 1위를 달성하는 등 관심을 끌었습니다. 또 '마스코트 호러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는 글로 사람들을 돕는 기자라는 직업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기자를 꿈꿨다. 그러나 기자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느린 천성 탓이다. 나는 걷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심지어 말하는 것조차 남들보다 조금 더뎠다. 안타깝게도 시계가 빠른 언론사에서 거북이는 살아남기 힘든 법. 그렇기에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렇게 느긋한데 기자 할 수 있겠어? 다른 직업을 고르는 건 어때” “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했다. 그런 말들에 오기가 생겼다. ‘더디면 틀에
추석 연휴에 부산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 5일 동안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달렸다. 빨간날 첫날 양평군 오빈역(경의중앙선)에서 출발했다.국토종주길은 인천 아라뱃길 서해갑문에서 낙동강하굿둑까지 총 633㎞ 거리다. 가상의 공간에 이 길을 죽 펴 놓고 라이더들을 점으로 찍어봤다. 수십 명이 모인 점부터 혼자 있는 점까지 우린 서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나와 속도가 비슷한 몇몇은 5일 내내 얼굴을 마주쳤다. 왜 달리십니까? 이 질문은 한 번도 못 했다. 나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 우린 낮에 페달을 밟고 밤
얼마 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즐겨 봤던 드라마의 영향이었을까. 주인공인 천재 변호사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마다 고래가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는 장면이 등장했다. 드라마가 종영하고 반년도 더 지난 나른한 봄날, 회사 근처 수영장 앞을 지나던 내게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나도 온몸으로 힘차게, 그리고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고 싶다.’ 고래를 꿈꾸며 그 길로 곧장 초급반에 등록했다.고래와 나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뻣뻣한 데다가 본능적으로 물을
시를 좋아한다. 학창시절엔 나만의 언어에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담아 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신문 편집은 또 하나의 신세계였다. 모든 낱말이 한때는 한 편의 시였다는 말처럼 심오하게 다듬어진 낱말들에 감성과 언어유희를 버무려 세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장인이라니. 언젠가는 편집기자가 되겠다고 꿈꾸었다. 작년 여름 드디어 편집기자가 되었고, ‘막내의 편집일기’를 쓰는 이 순간이 기쁘고도 무겁게 다가온다.편집을 시작한 지 7개월 된 막내의 일상은 규칙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들을 훑고 출근한다. cms에 들어가 ‘전국사회부’에
나에겐 고질병이 있다. 작심삼일.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 내 일상은 작심삼일의 반복이다. 사무실까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겠다는 다짐 세 번을 못 지킨다. 다이어트를 위해 떡볶이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셋째 날 한계가 온다. 오늘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겠다는 약속도 어김없이 삼일을 못 넘긴다.이런 내가 편집기자를 시작하고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한 연습이 있다. 애초 연습을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어느 날 데스크가 출근한 날 불러 세웠다. 매일 타사 사설 한 꼭지를 읽은 후 200자 원고
소소한 생활 공포 1. 하루에 몇개씩 인터넷으로 산 생필품 택배가 옵니다. 아내는 무슨 의식인양 포장에 붙은 주소지 스티커를 가위로 오려냅니다. 잘게 조각을 내서 쓰레기통에 버리죠. 왜냐고 물어보면 “혹시 해코지 할까 봐서”라고 합니다. 신혼 초엔 “하루 몇 십만개의 택배 상자가 돌아다닐텐데 그걸 가지고 뭘 한다는거야”라고 웃고 말았죠. 그런데 요즘엔 저도 택배가 오면 아내의 행동을 따라하게 됩니다. 택배 주소지를 가지고 모종의 범죄에 이용한다는 발상은 사실상 도시괴담에 가깝습니다만 뭔가 찜찜해요.소소한 생활 공포 2. 얼마전엔 제
편집부에 들어온 지 4개월. 겨울에서 여름을 향해간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편집은 내게 매일 다른 기분을 안겨주었다. 어떤 날은 기쁘고 감사했고, 어떤 날은 버겁고 씁쓸했다. 그럼에도 감사한 날들이 더 많았던 건 편집부 생활의 ‘배움’ 덕분이었던 것 같다.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지금 나는 온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며 편집기자로 열심히 자라나는 중이다. 때로는 갈 길이 구만리라는 생각에 막막하기도 하지만, 매일 새로운 배움이 있어 힘을 얻는다.편집을 배우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하면 거창하지만, 실제로 나는 편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그랜드 스윙’은 인생샷 명소다. 거대한 원형의 그네를 타는 모습과 성산일출봉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의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다. 강렬한 원 모양이 떠오르는 해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이 그네는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타오가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 바로 옆에 있다. 섭지코지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솟은 글라스 하우스는 뛰어난 건축미로 유명하다. 하지만 자연을 망친 흉물이라는 비판받기도 한다. 제주도는 자연이 창조한 화산섬 특유의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인간이 만든 카페, 미술관, 놀이동
신랑의 육아휴직이 끝나 맞벌이 부부가 된지 한 달쯤 지났다. 나도 진정한 워킹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말로만 듣던 ‘등원전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그 일의 실상은 시간과의 전쟁, 감정과의 전쟁이었다. 평일 아침 나의 일과는 이렇다. 출근 준비를 30분 만에 후딱 끝내놓고 자고 있는 아기를 깨운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볼 뽀뽀를 해주며, 20개월 아기가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한다. (울면서 깨어나면 답 없다.) 계란밥, 주먹밥, 된장찌개, 고구마… 아침은 간편하게 잘 먹는 것 위주로 먹인다. 옆에서
강판 1시간 전. 지면에 배정된 기사는 네 꼭진데 두 개도 채 제목을 다 못 뽑았더니 불안하다. 강판 30분 전. 레이아웃도 못 넘겼는데 아직 읽지도 못한 기사가 한 개나 남았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급한 마음에 기사를 읽긴 읽는데 눈에는 안 들어오고 기사가 프린트된 종이 위 밑줄만 벅벅 그어본다. 강판 10분 전. 지면제작기가 깔린 컴퓨터 앞에 앉아 데스크가 손을 본 마지막 기사의 제목 용지를 받아보니 빨간 줄 천지. 살아남은 제목이 얼마 없다. 선배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매끄러운 제목들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얼
“취업했다며? 그래, 무슨 일 하니?”먼 친척의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나 뵌 어르신들이 물었다.“기자 됐어요. 편집기자.”“기자라고? 취재하고 기사 쓰는 거니?”“아, 취재를 나가진 않고요….” 설명이 길어진다.매번 자기소개가 어려운 나는 통신사의 편집기자다. 편집기자도 생소한데 통신사라 지면은 다루지 않으니 “저 이런 일 해요.”하고 작업물을 보여주기도 애매하다. ‘온라인 편집’까지 설명할 생각은 포기하는 것이 다반사다. 편집기자협회 회원이라도 온라인 편집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기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온라인 편집
폰트 자체가 디자인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꾸준한 트렌드로 보인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아름답게 디자인된 한글 글꼴이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어딘지 모르게 ‘이단아’ 포스를 풍기는 서체가 하나 있다. 바로 2018년 베를린에서 글꼴 디자이너 함민주가 발표한 ‘둥켈산스’다. 둥켈(dunkel)은 독일어로 ‘어둡다’는 뜻이고 산스(sans)는 영어로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부리가 없는 수퍼 블랙 타입의 서체를 의미한다. 두껍고 강하지만, 글자의 검은 영역이 그리는 그림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둥켈산스. 그리
궁금해서 보느라, 한편으로는 일하기 위해 보느라 나를 밤잠 설치게 했던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태극전사들이 포르투갈전에서 꺾이지 않는 투혼으로 보여준 승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번 대회 최고의 선물이었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경기 충격패를 당하고도 끝내 집념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결말을 알 수 없는 한편의 흥미로운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다. 제목은 아마도 ‘메시’일 것이다.월드컵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외신 제목에도 눈길이 쏠렸다. 영국 ‘The Sun’의 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