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생과 서예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 열심히 먹을 갈고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글씨를 쓰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찮게 느껴지던 내 글씨가 작품이 되는 순간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그날도 생생하다. 처음 맡아본 지면이라 걱정이 턱 끝까지 찼다. 학창 시절부터 토론 주제로 자주 올라왔던 동물실험. 왜 지면으로 만나니 그렇게 막막하고 어려웠을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뒤로하고 기사를 가만히 봤다. 동물실험이 진작에 없어졌으면 안타까운 희생도 없을 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나오니 실험용 생쥐가 떠오른다. 그렇게
인연이었다.편집기자는 원하는 기사를 만나기 쉽지 않지만 히어로콘텐츠팀의 5회 시리즈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와 조우했을 때 전율을 느꼈다. 삶의 희망인 응급실을 찾아 길 위에 떠도는 응급환자들의 ‘표류’.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구급차 뺑뺑이’로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귀중한 생명을 놓친다면 어떤 심정일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표류의 시간’. 감정이입이 됐다. 현장을 생생하고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해 응급체계를 바꾸려는 히어로팀의 진심을 느꼈다. 숙명이었다.‘머리는 냉철하게,
지난 1년, 회사는 이사를 했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떠나갔습니다. 더 이상 늘지 않는 것 같은 실력, 이 직업에 대한 회의감까지… 16년 차에 찾아온 슬럼프에 가슴 속 그 ‘봉투’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기계적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때 찾아온 기획, 안락사. 죽음을 준비하는 그 사람들 앞에 그 ‘봉투’는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야근 끝나고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기사를 읽는데 불현 듯 떠오른 단어. ‘마지막 해방’… 죽음도 삶도 아
뒷고기는 경남 김해에서 유래한 말로 눈살, 볼살, 혀살 등 돼지의 특수부위를 일컫는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서민들이 뒤로 거래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뒷豚거래’기교를 부린 것처럼 보여도 어찌 보면 본문에 충실한 제목이다. 평소보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어느 순간 '툭' 하고 나왔다. 문제는 어울리는 그래픽이었다.영화 대부처럼 다크한 분위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기에 어떤 아웃풋이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늘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주시는 그래픽기자 선배들이 계시기에 든든했다. 지면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
뉴스라고 다 새롭진 않다. 신문에 늘 새 소식만 들어가지 않는다. 법안이나 정책은 추진•검토에서 시작해 국회 통과, 국무회의서 공표할 때까지 신문에 여러 차례 소개된다.같은 제목이 반복될 수 있다. 편집자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핵심 내용을 전달하면서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한다. 취재기자가 혼자만 알고 쓰면 특종이 된다. 편집자가 자기만 아는 제목을 달면 지면에 실리지 못한다. 너무 어려워도 너무 평범해도 곤란하다.데스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취재한 기자의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주변 동료들이 던져준 한마디가 제목의 물꼬를 트기도
약속의 시월이길, 사실 기대했다. 몇몇 선배들이 이전부터 ‘바람’을 넣기도 했지만, 내 바람이기도 했다. 상은, 더구나 한국편집상은 그 자체로 기쁨이지 않은가. 타사 선후배들과의 긴 출장(?)은 또 어떠한가. 코로나를 겪고 나니 이 부상이 더 반갑고, 더 감사하다.가린다고 가려지지 않는 게 있다. 실력이다. 머릿속이 하얀 날은 내 편집도 창백하기 그지없다. ‘짬밥’으로 잘 가려보지만, 데스크는 감쪽같이 들춰낸다. 이런 날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내 편집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는데... 많이 지나온 듯도 싶고, 많이 남은 것도 같다
다 차린 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데…로 받은 한국편집상은 우연히 찾아온 선물입니다. 갓 잡은 생선으로 요리해 별다른 조미료 없이 비린내 안 나고 감칠맛 나는 매운탕을 맛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편집상도 9할은 그런 싱싱한 재료 덕분입니다. 기획취재부 기자들이 서일본신문과 협업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소설과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지만, 그날의 진실은 80년 가까이 어두운 바다에 잠겨 있습니다. 취재팀은 일본까지 수소문해 희생자 명단을 건져 오고, 50년 전 생존자 증언록을 발굴하
나라 안은 전쟁 중이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 여야 간 혹은 당 내부에서 정쟁이 시끌시끌하다. 치솟은 물가 때문에 민생은 ‘못 살겠다’ 아우성이다. 밖은 더 심각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터졌고,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급등) 공포가 덮쳤다. 금리 인상은 세계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3년 가까이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코로나는 어떠한가.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외부활동에는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확진자 수는 아직도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며 우리 곁에서 영원한 이별을 고하지 않는다. 어렵다. 어려운 시기에 국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