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가 과학이듯’ 신문 편집도 과학
통일성 속 지면 변화·리듬 추구해야
그리드는 매뉴얼, 요리 레시피 같아
단, 너무 얽매이면 지면 답답해 보여

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39> 그리드

‘편집은 과학입니다!’

요즘 한 TV CF에서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추억 속 카피를 집중적으로 ‘리마인드’하고 있다. 덧붙여 ‘래시피대로 요리했을 때 가장 맛있다’며 식재료의 가로와 세로줄까지 맞춘다. ‘왜 침대광고에 어울리지 않게 논리적이고 정확한 과학과 래시피를 집중 부각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침대는 매뉴얼대로 제작해 가장 편하고, 위생적이고, 오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유행어는 신문편집에도 통할 수 있다. 그리드 시스템(grid system)에 맞춰 편집했을 때 지면이 가장 안정적일 수 있어 ‘편집은 과학이다!’라는 명제 또한 성립된다.

‘어떻게 기사의 정곡을 찌를까?’ 매일 뉴스룸에서는 편집기자들 고민이 이어진다. 편집기자가 기사의 팩트와 맥락을 정확하고 강렬하게 수용자에게 전달해 성공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는 주목성·가독성·조형성·창조성·영향성 등 디자인 기본 원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2023년 10월호 참조).

지면 레이아웃에서 위의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이 그리드 시스템이다. 그리드 시스템은 지면을 정밀하게 설계하고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기본 프레임이다. 일정한 기준과 틀에 따라 정보를 조직화하고 이것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드 시스템은 정보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의도한 메시지를 수용자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한 수단이다.  

따라서 그리드 시스템은 레이아웃할 때 공간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몇 단으로 기사를 흘릴 것인가, 헤드라인과 사진을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등의 문제를 주관적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칼럼 폭이 5.3cm 정도일 때 읽기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한다. 칼럼 폭이 최소 3.7cm보다 좁고, 최대 8.6cm보다 넓으면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그리드는 지면의 보이지 않는 가상선

그리드의 사전적 정의는 ‘지면이나 공간의 구성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조화롭게 조직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평·수직의 망(network)’이다. 편집 디자인에 있어 간결한 평면 계획은 수용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며 △명확한 느낌을 주며 △시각적 질서를 창조한다.  

편집기자는 그리드 사용으로 명료성(clarity)·효율성(efficiency)·경제성(economy)·연속성(continuity)·통일성(unity)·리듬(rhythm)을 얻을 수 있다. 그리드는 레이아웃에 체계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그리드로 기사와 기사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수용자의 시각적 움직임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드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고 방법이다. 편집기자의 창의성을 구속하고, 형태를 제한하고, 획일화하기 위한 ‘닫힌 프레임’이 아니다. 그리드는 편집기자의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통일성과 일관성 속에서 지면의 변화·리듬을 추구하게 하는 보조 장치이다.  

편집기자들은 그리드를 ‘지면의 보이지 않는 가상선’이라고 하며 또는 ‘지켜야 할 마법의 선’이라고 부른다. 이 보이지 않는 가상선이 지면에 흩어져 있는 레이아웃 구성 요소인 △텍스트 △헤드라인 △사진 및 일러스트레이션 △인포그래픽 △컬러 △여백의 질서를 잡아주고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드는 주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지면 구성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체계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면 전체 일관성·통일성 있게 만들어줘

까다롭게 그리드를 적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지면 전체를 일관성·통일성 있게 구성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때문이다. 또한 그리드가 페이지네이션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고, 개성을 부여하고,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상승시키고, 시각적 균형까지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너무 그리드에 얽매이다 보면 자칫 융통성을 잃어 지면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신문편집은 빠르게 다양한 정보를 제한된 지면 위에 구성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사실은 디자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로 획일적이다. 하지만 메인 이미지부터 1단 제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디자인 요소이기 때문에, 하나하나에 편집기자의 의도가 내포되어야 한다. 시간에 쫓기고 쏟아지는 기사를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면 레이아웃 구성 요소들이 아귀 안 맞는 퍼즐처럼 조잡하고 생경하다. 이때 편집기자는 정보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정보의 파괴자’로 전락한다. 헤드라인이나 제목으로 기사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시각적 혼란도 줘 수용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똑같은 식재료로 일류 셰프는 ‘오감 만족’ 명품 요리를 내놓지만 초보자는 시간과 재료를 낭비하면서 오감까지 마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초보 요리사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래시피가 존재하듯 편집기자에게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매뉴얼 중에서도 지면의 뼈대가 되는 그리드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드가 유지된 레이아웃을 통해 전체 페이지네이션의 일관성과 통일성이 가능해 진다. 그래서 그리드는 시대와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레이아웃 도구이며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