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미식축구 결승전 날이 ‘명절’
술 판매 3~4배 늘고 음주운전 최다
총이 필수였던 서부 개척시대의 삶
미식축구 열광엔 그 무의식 깔려

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LA 역사문화 기념물이자 공연장인 '윌턴 극장'에서 직원들이 가방검사와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여 총기 휴대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LA 역사문화 기념물이자 공연장인 '윌턴 극장'에서 직원들이 가방검사와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여 총기 휴대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2> 미식축구와 총

  ‘친절한 톰 아저씨’로 친숙한 톰크루즈의 25년만의 속편 ‘탑건2 : 매버릭’에 보면 오합지졸 팀원들의 단합과 결속력을 위한 명장면이 있다. 석양을 배경 삼아 선글라스를 끼고 몸짱을 과시하며 해변에서 미식축구를 하는 모습이다. 미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클리셰 중에 하나이다. 

  실제로 공원이나 주변 공터에서 아버지와 아들, 형제나 친구끼리 타원형의 미식축구공을 서로 던져, 주고받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만큼 미식축구는 영화의 한 장면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미국인들의 삶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이자, 미국인들의 중요한 문화이다. 

  매년 2월 초가 되면 열리는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Super Bowl) 경기는 추수감사절, 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에 이어 미국의 네 번째 명절이라 불릴 만큼, 미국인들에게는 국민적 축제이다. 경기 전부터 언론·미디어에서는 슈퍼볼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고 거리에는 광고가 도배를 이룬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내가 알던 슈퍼볼이 슈퍼볼(Super Ball)이 아니라 슈퍼볼(Super Bowl)이었다. Ball/bôl/과 Bowl/bōl/은 발음기호가 똑같아 보이지만 ‘o’자 위에 각자 다른 작은 표시가 있으며, 발음할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표기할 때 둘 다 ‘볼’로 쓰기 때문에, 그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사발’ 모양의 스타디움에서 치르는 경기를 뜻하는 슈퍼볼(Super Bowl)을 슈퍼볼(Super Ball)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올해의 슈퍼볼은 지난 2월 11일 미국 라스베가스 얼리전트스타디움(Allegiant Stadium)에서  열렸다. 2020년 개장한 얼리전트스타디움은 6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BTS와 블랙핑크 등 케이팝 그룹의 대형 공연을 유치해 전 세계에 알려진 스타디움이기도 하다. 이번 경기는 슈퍼볼 역사상 네바다주에서 처음 열린 경기였다. 캘리포니아주와 인접해 있는 곳이기에 LA에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2022년 개최 도시였던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와 2023년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 이어 3년 연속 미국 서부에서 슈퍼볼 경기가 개최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2024 슈퍼볼 LVIII는 2023 시즌 미국 프로풋볼리그(NFL)의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해 치러진 미식축구 경기였다. 이번 슈퍼볼은 NFC(National Football Conference) 챔피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San Francisco 49ers)와 AFC(America Football Conference) 챔피언이자 디펜딩 슈퍼볼 챔피언인 캔자스시티 치프스(Kansas City Chiefs)가 대격돌해 미국 프로 풋볼챔피언을 결정했다. 두 번의 연장전 끝에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챔피언 우승컵을 2022 시즌에 이어, 연속 두 번을 가져가게 되었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이자 축제인 만큼 슈퍼볼(Super bowl)을 전후해서 많은 이야깃거리도 생산된다. 하프타임에는 라이브공연과 색다른 광고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많은 유명 뮤지션들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 1순위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30초 광고가 7백만 달러임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다. 약 1억 2천만 명의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관심 갖는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천문학적인 경제효과를 방증하듯, 슈퍼볼을 앞둔 주말에는 식료품점(Grocery Market)이나 술 판매점(Liquor Store)은 대목을 맞는다. 슈퍼볼 경기가 있는 당일 저녁은 친구들과 가족이 함께 모여 파티를 즐기며, 하루 평균 개인 음주량이 가장 높은 날이자, 술 판매량이 평일의 서너 배가 넘는 날이기도 하다. 음주운전 사고가 가장 많은 날이고, 미국 와서 처음으로 음주단속을 경험해 본 날이기도 하다. (미국 LA는 도로를 막고 음주단속을 잘 하지도 않고 지역과 시간 등을 예고하고 실시한다)

  하지만 화려한 빛이 있으면 짙은 어둠도 있다. 

  올해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슈퍼볼 우승을 축하하기 위한 대규모 행렬과 집회가 열린 가운데, 예기치 못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최소 1명이 사망하고 21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 총기 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총격 사건은 벌써 49건이며 이로 인한 사망자는 80명, 부상자는 170명 이상에 달한다. 또한 총기로 인한 자살 사망자 수는 3,036명으로, 하루 평균 66건의 자살을 의미한다. 한인들의 총기 관련 사고도 끊이지 않아서, 신문에도 평균 한주에 3~4번 정도 총기 관련 사건·사고 기사가 나온다.

  22명의 사상자를 낸 캔자스시티의 슈퍼볼 우승 축하 행사장 총격 사건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한 말다툼이 무고한 두 아이의 엄마를 살해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캔자스시티를 관할하는 잭슨 카운티의 검찰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격 사건의 주요 용의자 2명을 살인과 불법 무기 사용 등 중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군중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시작됐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총을 쏘기 시작했고 곧바로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각자 총을 꺼내 격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근처에 있다가 총에 맞아 숨진 여성은 범인 중 한명이 쏜 총탄에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희생자인 여성은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지역 방송국 DJ로 일하며 주민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군중 100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됐으며, 경찰 800여 명이 현장에 배치됐지만 총격을 막지는 못했다. 사고는 하루가 멀게 터지고 규제 목소리는 매일 나오지만 통제는 ‘말 뿐인 구호’이고 강제로 없어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미국인에게 총은 필수품이다. 그들에게 총은 자신을 지켜주고 이겨서 땅을 뺏고,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온 최고의 수훈이며 생명과 같은 존재다.

  개척시대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총은 필수 도구였으며 싸워 이기며 땅을 빼앗고 차지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무의식은 결국 미식축구라는 스포츠로 귀결된 것 같다. 전 국민이 열광하고 사랑하는 미식축구는 싸워서 땅을 쟁취해 세워진 미국의 상징이자 역사 자체인 운동인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총과 미식축구를 주로 꼽는 이유인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미국인들은 눈인사를 자주한다. 처음에는 ‘친절한 톰아저씨’와 같은 친근함의 표현인줄 알았는데 회사에 계신 선배가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오차장, 그들의 눈인사는 ‘난 총이 없어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하는 모습이야.”

  난 오늘도 집에 가면서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눈인사를 하며 퇴근을 한다. ‘나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나도 총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