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서울도서관장 특별인터뷰

협회가 7월에 여는 편집역사전
서울 ‘야외도서관’과 하루 겹쳐

‘종이책 관심 어떻게 늘리냐’에
“강요 말고 스스로 책 집게 해야”

야외행사 핵심은 ‘참여와 경험’
“광화문광장 온 가족 매료시켜야”

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서울도서관 오지은 관장
서울도서관 오지은 관장

 “시민들에게 ‘지하철에서 책 읽으라’는 캠페인을 왜 하나요? 그런 자리에선 휴대폰으로 정보를 획득하고 소통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서울특별시의 도서관 정책을 대표하는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저는 ‘책 읽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휴대폰 접근을 막는 데 찬성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정보기기를 충분히 잘 활용하는 파워유저로 성장해야 합니다. 단, 지금처럼 한쪽으로 지나치게 경도된 교육환경은 위험합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면서 커야 우리 아이들이 균형 잡힌 시민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전국 공공도서관협회장도 맡고 있는 오 관장은, 책 읽는 문화를 확산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오로지 책’을 외치는 편식주의자가 아니었다.

  한국편집기자협회의 ‘60주년 편집역사전’ 행사에 대한 팁을 얻기 위해 서울도서관을 찾아 오 관장을 만났다. 5일에 걸쳐 열리는 편집역사전은 마지막 날 행사가 서울도서관의 ‘야외 도서관’과 함께 진행된다. 이런저런 얘기를 꺼낸 뒤 막판에 협회 행사를 풍성하게 할 아이디어를 슬쩍 요청했는데, 이미 준비를 해놓은 듯 ‘솔루션’이 술술 흘러나왔다.

Q. 서울도서관에 대해 소개한다면.

“서울도서관은 서울시 전체 도서관을 대표하는 리딩 도서관입니다. 장서는 56만권으로 많은 편이 아니지만, 서울의 도서관 정책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는 ‘내 삶을 바꾸는 지식문화도시, 서울’을 목표로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청계광장에서 야외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야외도서관은 도서관서비스의 대표적인 혁신 모델로 2023년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 친환경 도서관(Green Library Award) 국제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3년에 시민들이 뽑은 ‘서울시 10대 뉴스’ 1위를 차지했다.

Q. 장서를 밖으로 가지고 나와 펼쳐놓고 읽게 한다는 야외 도서관의 개념이 신선합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정숙하고 재미없는 공간 아닌가요? 책을 읽는 행위는 즐거워야 합니다. 또한 사서가 정리해준 ‘책의 지도’를 더 많은 시민이 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이상기후 시대에 환경에 안 좋은 건물을 꼭 지어야만 책을 읽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고민들이 쌓여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책을 야외에 가지고 나가는 것만으로 책을 더 많이 읽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책을 많이 갖다놓는 것보다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자’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책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테마에 맞게 소개하고, 손을 뻗으면 바로 책을 집을 수 있게 비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행사 초기엔 빈백을 1인용만 놨었는데, 연인들과 가족도 같이 앉을 수 있게 ‘커플 빈백’, ‘가족 빈백’으로 소품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렇게 작년엔 103회 야외도서관을 운영했고, 올 해는 196회로 늘릴 계획입니다.”

Q. 야외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 시민들의 반응을 조사해봤는데, 야외 도서관에 온 시민들의 86%가 행사장에서 책을 읽었다는 답변을 해줬습니다. 어떤 분은 ‘일 년 간 책 한 권 안 읽었는데, 여기 와서 처음 읽었다’고도 말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인디언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 책을 놨는데, 텐트 안에서 책을 읽던 한 아이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이런 게 행복 맞지?’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좋아하잖아요. 그 니즈를 충족시키며 책을 제시하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잖아요. 평소엔 접근이 쉽지 않던 도서관이 밖으로 나오자, 자신의 ‘책 읽는 취향’을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저희 행사도 더 많이 홍보가 됐고요.”

Q. 도서관 내부에서 책을 밖으로 빼는 데 대해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았을 것 같네요. 내부 설득은 어떻게 하셨나요.

“사서들이 ‘관리가 힘든 책을 어떻게 밖으로 가지고 나가나. 야외도서관 운영하며 음식물 먹게 해도 되겠나’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심지어 오세훈 시장까지 관리가 괜찮겠냐고 반문하셨죠. 하지만 만족은 욕구가 충족돼야 찾아옵니다. 이것 안 되고 저것 안 된다는 식의 통제가 들어가면 제대로 즐길 수가 없습니다. 태안 기름띠 사태 때 나온 자원봉사자들의 물결과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은 최고 수준입니다. ‘시민의식을 믿는다’는 말로 시장님과 내부의 반대에 정면승부를 펼쳤습니다. 행사 때는 시민들에게 대놓고 말했습니다. ‘쓰레기 제로, 책 분실률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민의식을 보여주세요’라고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장님이 우려하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치러지는 야외 도서관 행사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건물 안 도서관에선 시민들의 불평 접수가 많았는데, 도서관이 야외로 나가니 시민들이 고생한다면서 고마워하더라’는 말을 사서들이 전해 주었습니다.”

Q. 야외 도서관 행사 중에서 특히 호응이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사람들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여행 도서관 콘셉트가 시민들의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번주는 스페인입니다’라고 하면서 드레스코드까지 ‘레드’로 정합니다. 해당 국가의 대사가 직접 찾아와 시민들을 만납니다. 5월엔 덴마크, 6월엔 우주를 테마로 진행합니다. 연내에 홍천과 영월 등 지방도시를 주제로 한 테마 도서관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행사의 키워드는 연결과 확장입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독서 축제는 사람들의 트렌드와 독서문화 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Q. 전국 공공도서관장을 맡고 계십니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도시농업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통상 이런 프로그램은 도서관 밖에 텃밭을 만들어 놓고 ‘수업 따로 실습 따로’ 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그런데, 저는 도서관 건물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 회의실에서 이론교육을 받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 실습을 해보는거죠. 이런 방식의 도시농업학교는 ‘기존 도서관에서 하지 않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의 니즈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 방법은 관찰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과 pc의 결합’이란 니즈를 어떻게 찾아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빅데이터를 통해 통찰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그런 방식이 불가능합니다. 관찰을 통해 통찰에 이르는 사고를 해야 합니다. 리더는 방향을 지시하는 자리입니다. 도서관의 책임자로서 저는 코로나 격리를 겪은 시민들의 ‘대면하고 싶은 욕망’을 들여다 봤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비록 하루뿐이지만, 올 7월엔 편집기자협회 ‘신문편집전’과 서울도서관 ‘야외 도서관’ 행사가 같은 장소에서 열리게 됩니다. 신문역사전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야외 도서관을 해보니, 참여하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행사에 온 시민들이 활동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장치를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광화문 광장엔 가족 단위로 많이 놀러 오니, ‘가족신문 만들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희는 구정 때 ‘걱정인형 만들기’를 해봤는데, 1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종이신문이든 종이책이든, 뉴 미디어로 달아난 소비자들을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종이의 가치를 믿으세요. 스마트폰도 필요하지만 종이 미디어도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게 나을 땐 스마트폰을 쓰고,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읽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의 위기’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