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영역으로 여겨지던 ‘특파원’

“한뼘 더 성장할 것” LA행 도전장

혁신 지면 자제하는 ‘경성 편집’

미국 생활, 편하지만 ‘펀’하진 않아

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되돌아보면 잊지 못할 ‘첫 경험’의 순간들이 있다. ‘영원한 우정이 있다’고 믿었던 초중고 시절, ‘애틋한 첫사랑’을 간직한 대학교 시절, ‘홀로서기’로 힘들었던 7년간의 군 생활, ‘제목 달기’를 배웠던 편집기자의 첫걸음…. 처음이어서 서툴고 미숙했지만, 그때마다 새로움이라는 씨앗은 삶에 좋은 양분이 되었다.

아마도 인생의 가장 큰 첫 경험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던 순간인 것 같다. 8살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환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오마주 하듯 나도 많이 성장하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며 가슴 떨리는 첫 경험의 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설렘’이라는 단어를 잊고 지내온 시간이 오래된 거 같다. 이마에 주름이 깊어질수록 나의 감정은 점차 밋밋해지고 있다. 그냥 살아 나가는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미국 LA 연수 특파원'이라는 낯선 타이틀이 붙여진 인사 명령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40대 후반의 아저씨가 다시 설레게 됐다.

☞ ‘편집 특파원’에서 계속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미주한국일보 본사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미주한국일보 본사

‘재밌는 지옥’서 점프했다…  40대 아재의 ‘심심한 천국’

편집쟁이로만 살아온 기자 생활에 취재의 영역으로만 생각되던 ‘특파원’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타이틀을 받고 새로운 문을 또 열어본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서툴고 미숙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성장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이 내 삶에 다시 활력소가 될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에 편집부 식구들에게 짧은 글을 남기었다. ‘한 뼘 더 성장해 오겠다’고…. 매일 새로운 활동을 탐색할 수는 없지만 매일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조율하며 ‘성장의 첫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협회보를 빌려 초짜 편집기자 특파원의 생활기를 차분하게 전달해 볼 생각이다.

‘미주한국일보’는 LA 한인 타운 중심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쌍둥이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LA에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사로 한인 커뮤니티 사회에서 주류로 평가받는 언론사이다, 도로 건너 맞은편에는 ‘라디오코리아’가 있고 도보 5~10분 거리에는 ‘미주중앙일보’와 ‘MBC’ 그리고 ‘SBS’가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언론사들은 한곳에 모여 있기를 좋아하나 보다.

회사와 집 거리는 차로 10분 정도 자전거로 약 15분 정도이다.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나중에 운전면허 취득기를 통해 소개하겠지만 한국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가져와도 캘리포니아에서는 무면허 취급을 받는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자동차 보험 가입도 안 된다.

회사의 업무는 10시에 출근해서 7시 퇴근이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칼같이 8시간 근무 체계다. 이곳에서의 편집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사는 늦게 들어오고 강판 시간도 지켜지지는 않는다. 한미 신문사의 공통적인 ‘고질병’인 거 같다.

한국과 미국의 회사 생활 장단점을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의 편집은 재밌지만,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분이다. 동료들의 편집, 다른 회사의 참 잘 만들어진 지면, 그리고 편집상 수상작들을 보면 항상 즐겁고 새롭고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만든다’라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살짝 망가지기도 한다.

편집기자란 직업이 지면을 직접 만들지만, 결국엔 취재·그래픽 기자 등과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이다. 즉,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편집기자가 생각하는 멋짐과 취재기자 원하는 멋짐이 다를 때도 비일비재하다. 어느 순간이 되면 ‘제목을 이걸로 할 것인가?’ ‘그래픽을 이렇게 할까?’ ‘사진은 이게 괜찮을까?’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검열이 시작되고 여기저기 잡음이 들려오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초판에 만족한 지면이 다음 판에서는 싹 바뀌는 경우도 있고 본인만의 고집으로 편집 자체를 무시해 버리고 상투적인 단어로 꽉 채운 제목을 원하는 취재도 있다. 피로도는 올라가고 성취감은 낮아지고 퇴근 후엔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고 악순환이 지속되면 몸과 마음은 점점 사막화가 되어간다.

미국에서의 편집은 편하지만 펀(FUN)하지는 않다. 미주한국일보는 매일 평균 약 58페이지 정도 제작하는 일간지이다. 지면이 많은 것 같지만 절반가량은 광고가 차지한다. 지면 구성은 크게 사회와 경제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고 사회 섹션에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사고가 주요한 톱 기사이다. 경제 섹션은 미국 연준 기사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기업 기사 그리고 한인 은행 부동산 기사들이 주를 이룬다.

취재부서의 간섭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편집권에 선을 넘는 경우는 없다. 직무에 대한 차별이 없고 다 대등한 위치에 있는 느낌이다. (오바마가 청소부랑 주먹 인사를 하던 사진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 눈치 볼 일도 없다. 퇴근 타이밍을 찾지 않아도 되고 업무가 늦어지면 남아서 하면 된다. 업무시간 이후 오버페이가 확실하다.(사실 일한만큼 받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이게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회식문화도 거의 없다. 술값이 비싸기도 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이유도 한 몫 하겠지만 퇴근 이후 개인 시간을 침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업무시간이 일정한 편이어서 그 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업무 피로도가 한국에 비해 적어서 남는 시간에 뭘 해볼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경험’을 할 체력과 정신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편집은 참 재미가 없다. 다른 회사와 비교 할 수 있는 지면은 미주중앙일보가 거의 유일하고 기사도 한인 커뮤니티 위주로 스케일이 크지 않다. 편집의 작업량은 많지만, 크레이티브 한 걸 많이 요구하지는 않는다.

‘연성 편집’보다는 ‘경성 편집’을 선호하기 때문에 편집이 대체로 간결하다. 그렇다 보니 ‘우물 안 편집’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파트가 주어지고 딱 그만큼만 해내면 된다. 혁신적 지면을 자제하다 보니 ‘내가 만들었다!’라는 성취감은 상당히 적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에서는 융통성 있게 넘어가던 것들이 여기선 칼같이 지켜진다. 사고가 발생하면 반드시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해고가 너무 쉽다. 어느 날 안 나오면 해고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해줬다. ‘재밌는 지옥에서 살 것인지, 심심한 천국에서 살 것인지….’ 너무나도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