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혁신 부문 강원도민일보 편집부

강원도민일보 편집부 ‘펀집숍’
한 사람씩 기획·기사작성·편집
1년동안 부원들 총 14편 연재
취미·휴가 일상이 모두 소재

올해부터 ‘KADO우체통’ 시작
칼럼 형식의 미니 박스 두 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습관을
일기도 좋고 SNS 글도 좋다”

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강원도민일보 편집부원들이 신문을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편집부원들이 신문을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펀·집·숍’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편집기자들이 기사를 직접 쓰고 편집까지 해보는 건 어때?”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의 시작은 송정록 편집국장의 말 한마디에 시작됐다. 뚜렷한 구상도, 주제도 없이 던져진 과제에 선뜻 그리하겠다 답하지 못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부원들에게 입을 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면 뒤편 이름 없이 묵묵히 활동해 왔던 편집기자들을 지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고심 끝에 기획을 결정짓고 부원들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기획을 시작할 때 부서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하루 3~4면씩 편집에 시달리는 부원들에게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 기획을 설명하고 참여 의사를 묻기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부원들을 달래며 부서를 이끌어가고 있는 와중에 겨우 진정된 ‘벌집(?)’을 건드려 큰 화를 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컸고 일을 얹어 주는 것 같아 꺼려졌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흔쾌히 도전해보겠단 반응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원고작성은 업무 외 시간에 이뤄졌나?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편집을 하면서 기사도 쓰는 건 사실상 많은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매일 레이아웃, 제목과 씨름하는 편집기자의 일상에 ‘창작의 고통’은 업무시간 외에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고 작성을 위해 따로 시간을 할애하고 공들이면서도 힘든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은 편집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편집만 하다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물론 처음엔 막막했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지면이고, 타 언론사의 사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지면에 들어가는 기사와는 다르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의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기사의 주제를 한정 짓지 않았고, 평소 본인의 관심사를 주제로 잡고 글을 작성했기 때문에 (물론 창작의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만) 생각보다 독특하고 다양한 주제의 기사가 나왔다. 주제 선정, 기획, 취재, 기사 작성, 편집까지 지면을 맡은 기자 한 명의 몫이었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취미생활부터 휴가에서의 이야기, 머릿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보석 같은 단상들이 지면에서 살아 숨 쉬는 걸 보면서 데스크도, 편집자도 함께 기뻐했다. 다만 막내 기자들에게는 입사 후 처음 바이라인에 이름이 나가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면에 이름이 실린 본인만의 기사를 보면서 뿌듯했을 것이다. 편집기자의 삶에 본인이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니까.

-편집국장이나 다른 부서의 반응은 어땠나? 기획을 준비하는데 어떤 도움이 있었나?

기획을 이어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편집국장과 취재부서의 응원이었다.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아이템이 신선하다’ ‘편집이 독특하고 눈에 띈다’ 처럼 좋은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모두를 만족하는 아이템과 지면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편집기자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작은 한마디가 원동력이 됐다. 

-기사를 쓴 사람이 편집까지 맡았나? 아니면 편집은 다른 기자가 했나?

기획에 들어가면서 정한 큰 원칙 하나가 바로 ‘쓴 사람이 짠다’였다. 편집기자들이 본인의 이름을 내건 하나의 지면을 완성하는 대장정이었다. 기사작성부터 편집까지 오롯이 편집기자 한 사람의 손길로 탄생했다. 지면편집에만 몰두해 온 편집기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 기사작성까지 맡아 진행하기에 초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거나, 취재가 충분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도 많았고 수차례 탈고를 거쳐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본인의 기사를 직접 편집하게 되니 지면제작에 더 많은 애정과 정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게 편집기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홍석범 기자에게) 낚시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보여줬다. 본인에게 낚시란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낚시를 시작한 지 3년밖에 안 되는 초보 조사다. 옆에서 친구가 하던 낚싯대를 빌려서 하다가 흥미를 붙였는데, 어종별 생태를 꿰뚫는 친구에 비하면 나는 한참을 더 배워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년 전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여가를 보내기에 정말 좋은 취미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분석과 만반의 준비를 해도 고기 그림자조차 못 보는 날이 있고, 대충 미끼를 던지고 전화통화중에 잡히는 날도 있다. 이런 점이 나에겐 매력으로 느껴진다. 루어낚시는 등산보다 덜 힘들고 산책보다 재밌는, 그 중간쯤 자리 잡는 취미생활이다. 아마 거동이 가능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앉아서 계속 찌를 바라보는 낚시가 별로라 생각된다면, 루어낚시를 해보길 권한다. 목적은 같아도 방법이 완전히 다른, 색다른 취미생활로 느껴질 것이다.

-(지면 편집자에게) 편집부에서 생산한 기사라 특별히 신경 쓰이는 점은 없었나? 편집부 외에서 간섭 같은 건 없었나?

처음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 연재가 시작될 때 ‘과연 편집기자 혼자 지면 제작의 모든 과정을 맡아서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들었다. 또 ‘편집부 기자는 편집만 잘하면 되지… 아무래도 글은 못 쓰지 않을까’하는 편견을 깨는 게 급선무였다. 타 부서 동료들도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타 지면의 기사와는 달리 마감시간이 긴 게 유효했다. 충분히 숙고해서 작성하고 퇴고할 시간도 많이 주어졌기 때문에 기사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연재가 계속될수록 동료들의 우려 어린 시선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코너의 막바지에는 믿고 보는 기사로, 기사가 나가는 날엔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였다.

-지난해 9월 이후 상당기간 연재가 중단됐다. 혹시 어떤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도전도 오래 지속되면 식상해지는 법.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은 1년여 기간 동안 14편의 기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박수칠 때 떠났지만 ‘박수의 맛’을 봤지 않은가. 코너 종료와 동시에 새로운 코너를 구상했다. 편집기자가 취재부터 편집까지 하는 걸 기본이라고 가정하면(너무 잔인한 이야기 인가?) 독자에게 사랑받을 새로운 콘셉트가 필요했다. ‘기사는 어려워도 누구에게나 편지는 쉽게 읽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코너는 ‘KADO 우체통’이었다. 수신인은 미담 속 작은 영웅일 수도 사건 속 피해자 일 수도 있다. 코너 속의 또 다른 코너로는 올해 등단한 박희준 시인의 ‘시인하는 기자’, 편집부 유부녀 기자들의 ‘부인하는 기자’가 있다. 총 세 편의 편지 형식의 기사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주고 있다. 어쩌면 질문대로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이 코너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수의 맛’은 여전히 달콤한 건 사실이다.

-올해 시작한 ‘KADO우체통’도 흥미롭다. 등단 시인이 쓰는 ‘시인하는 기자’와 편집부 유부녀 기자 2명이 쓰는 ‘부인하는 기자’ 참신하다. 어떤 의도로 시작하게 됐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펀집숍’은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1년만 끌고 가는 것이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집국장이 시즌2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고, 역시 또 거절하지 못했다. 같은 포맷은 지루할 것 같아 부서 회의를 통해 칼럼 형식의 지면을 만들어 보자 결정했다. KADO우체통 타이틀은 막내기자의 아이디어다. 칼럼 하나로 한 지면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일것 같아 미니박스 두개를 만들어보자 했는데, 마침 등단한 박희준 차장이 스치듯 한 말 “시인은 시인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시인하는 기자’이고 여기에 맞춰 ‘부인하는 기자’도 탄생했다. 담기는 내용은 전혀 관계가 없지만 대비되는 단어인 ‘시인’과 ‘부인’을 부각하고 싶었다.     

-(박희준 기자에게) 등단 시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시인하는 기자’로서 편집 일이 시를 쓰는데 도움이 된 게 있다면?

올해 초 <시와정신> 등단 소감에서 ‘분명한 것은 시인은 마음 속 이야기를 ‘시인’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글을 쓸 때 그 사람의 ‘체취’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나의 평소 생각과 행동이 제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편집과 시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편집과 시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떠한 하나의 사실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 독자에게 전달되기 전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 편집이 시를 도와줄 때에도, 시가 편집을 도와줄 때에도, 2인3각 경기를 뛰는 것과 같이 함께 호흡을 맞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박희준 기자에게) 전업 시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편집기자 일을 계속할 것인가?

질문에 대답부터 하자면 ‘그렇다’. 이 질문은 등단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인데, 전업 시인으로 산다는 게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인을 포함한 모든 작가들, 흔히 ‘글밥’을 먹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업’을 가지고 글쓰기를 소명으로 아는 ‘천직’의 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전업 시인이 가능하다면 평생 시만 쓰고 싶다. 하지만 ‘편집밥’도 꽤나 맛있어서 밥상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다. 아마도 ‘글밥’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일 거다.

-‘펀·집·숍’으로 강원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는데, 감회는? 

함께 고생한 편집부 전원이 함께 수상을 했다는 점이 좋았다. 개인의 영광도 좋겠지만 다 같이 고생한 편집부의 노고를 함께 자축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FUN)집숍’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집자 개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의 사장 마인드로 글을 쓰고 심혈을 기울여 편집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상보다 값진 결과였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요즘은 편집부에 여러 가지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회사 편집부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조언이라는 단어가 참 무겁게 다가온다.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방향을 제시하는게 조심스럽다. 다만, 어떤 일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벽이 없었으면 하는게 바람이다. 처음 기획을 제안받았을때 ‘부원들이 싫어할 거야’라고 생각한것은 선입견이란 벽이었다. 이 벽을 부수지 못했다면 부원들의 자부심도, 수상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부원들이 취재와 편집 사이 마음의 벽을 부수지 못했다면 취재분야의 고충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면 그 높이만이라도 낮추는 노력과 배려가 있으면 한다.

-‘글 잘 쓰는 편집기자’를 위한 조언도 부탁드린다.

교과서만 공부했는데 서울대 갔다는 이야기처럼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 우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글을 읽는 게 중요하다. 편집기자로서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읽는 기사의 양이 상당하지만, 사실 자신이 맡은 지면의 기사만 읽기 때문에 생각이 편향될 가능성이 높다. 글도 잘 쓰고 편집도 잘하는 것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되는 문제다. 작가와 편집기자 모두 글을 다루기 때문에 맞춤법과 문맥을 짚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편집기자는 누군가 생산한 글을 재가공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일기를 써도 좋고, SNS에 글을 게재해도 좋다. 다른 사람의 글만 읽다보면 나의 주체적인 생각이 배제된 채 물들기 십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써야한다. 이게 전부다.

-앞으로도 편집부에서 만드는 지면을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

 부원들이 허락한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시즌3를 이어가고싶다. 이번에는 편집국장의 제안이 아닌 부원들의 달콤한 요구를 듣고싶다. 김영희·김명준·노현아·박희준·홍석범·한나라·황지영·라선근·이정민 기자 중 누구의 입이 먼저 열릴지 지켜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