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승리의 여신 니케의 진짜 아우라



1. 에펠탑
어떤 것은 멀리서 봐야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는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기에 한 발 떨어져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처럼. 에펠탑처럼 큰 구조물은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요궁이나 세느강 유람선에서 에펠탑을 본다. 멀리서 더 잘 보인다면 에펠탑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방 검사까지 하고 올라간 에펠탑에선 파리의 전경이 한눈이 펼쳐진다. 대부분 관광객처럼 에펠탑을 뱅글뱅글 돌며 파리 전경을 구경하다 문득 동그라미가 양각처럼 새겨지고 군데군데 칠이 일어난 철골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는 선으로 보이는 에펠탑의 어떤 ‘면’. 다른 면들도 눈에 들어왔다.
빨간 엘리베이터에 붙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소매치기 주의 안내문, 빠져 나가기도 힘들게 쇠막대기로 만든 회전식 출구. 에펠탑의 위용 뒤에는 테러 공포·좀도둑·불안 같은 것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막연한 겉모습과는 다른 속.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안에서 밖에서, 또 가까이서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2. 세로 풍경
파리와 벨기에 신호등은 세로다. 시야를 덜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파리의 신호등은 크지도 높지도 않다. 신호등 주변에 걸리는 것도 없고 시선도 쉽게 닿는다. 파리는 건물 고도를 제한하고 전선을 지중화해서 전봇대나 주렁주렁 전선도 없다. 거리의 모든 요소들이 튀지 않고 각자 조화롭게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 보니 사방에 늘어진 전선과 높게 걸린 가로 신호등, 그리고 거기에 뒤섞인 가로수, 모든 것들이 제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제목과 사진과 일러스트가 지닌 각각의 의미에 힘을 주다보니 결국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식상해진 지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길
파리의 몽마르뜨, 벨기에 브뤼헤와 브뤼셀 도로에는 돌이 깔려 있다. 아스팔트 아니면 붉거나 회색 벽돌이 아니라 모양·색이 조금씩 다른 돌들이 길을 만들고 사람을 이끈다. 특히 브뤼헤의 길은 예쁜 건물들 사이로 길이 흐르는 것 같다. 살풍경한 아스팔트가 건물 사이를 뚝 끊어내는 한국의 도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물이 흐르듯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도 만나고 세상도 만나게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길이었다.




 
4. 루브르
루브르에는 모나리자가 있고 밀로의 비너스도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간다. 벤야민이 말한 것 처럼 그곳에만 있는, ‘진짜’의 아우라를 찾아서. 루브르는 아우라를 풍기는 수많은 걸작들과 그것을 찾아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복제품이 넘치고 첨단 미디어로 어디서나 작품을 볼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산 넘고 물 건너 루브르로 모여든다. 우뚝 선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 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아우라를 생각해 봤다. ‘사람들이 찾는 뉴스, 팔리는 신문’의 힌트가 거기 있지 않을까. 쉽게 복제되고 그만큼 쉽게 버려지는 뉴스의 시대에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