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추리소설 작가 경향신문 최혁곤 차장


창작 두려움 있었지만 과감히 도전
2003년 잡지에 단편 쓰며 작가의 길

 

경향신문 최혁곤 차장은 투잡을 뛰고 있다. 주중엔 편집기자로, 주말엔 추리소설작가로 일한다. 최혁곤 차장은 장편 ‘B컷’으로 2006년 데뷔해 2013년엔 작품 ‘B파일’로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한국 추리스릴러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은 장르소설로는 이례적으로 ‘오늘의작가상’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하루하루 마감에 쫓기며 긴 시간 글을 써야하는 일,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일상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인내해야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시간을 쪼개 쓰며 자신의 꿈을 쫓는 최혁곤 차장의 ‘이중생활’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추리 소설을 쓰게 됐나.
초등학교 시절 습관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었다. 학급문고에서 셜록홈즈나 아가사크리스티 작품을 빌려 많이 봤다. 중학교 가서는 상대적으로 한국추리소설을 많이 봤다. ‘여명의 눈동자’를 쓴 김성종 작가의 추리소설 한번 봤다가 알게 모르게 국내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때 어른이 되면 추리소설을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 살이 됐을 때 2000년대 초 ‘콘텐츠’라는 말이 유행했다. 신문에서도 ‘원 소스 멀티 유즈’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그 시절 ‘나만의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어릴 때 읽어놓은 수백 권의 추리소설이 떠올랐고 그걸 어떻게 활용해 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해놓은 게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창작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있었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습작에 도전했다.
 
데뷔는 언제 했나.
‘계간 미스터리’라는 잡지가 있다. 2003년부터 잡지에다 단편을 자주 발표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장편에 도전했다. 장르소설은 아무래도 장편이니까. 2년 정도 준비를 하고 2006년에 쓴 게 나온 ‘B컷’(출판사 황금가지)이다. 첫 장편 데뷔작이다.

 

형사와 여자 킬러가 나오는 B컷? B컷은 영화 ‘추적자’ 급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그 다음에 나온 것이 ‘B파일’인가? B파일은 트랜스 젠더 등 소설 속 캐릭터들이 특이하던데.
B컷은 퇴출당한 형사와 여자 킬러의 이야기다. 느와르가 가미된 액션 스릴러다. B파일은 조선족 은행원이 주인공인데 제가 캐릭터들을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등 마이너리티들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마이너 캐릭터를 자주 등장 시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독자들은 추리소설의 틀을 빼면 사회고발 소설이라고 하던데.
그런 장르가 있다. 보통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요즘 일본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장르다. 작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선 ‘백야행’이 많이 알려져 있다. 마이너리티를 등장시키는 이유는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두 가지다. 곤경에 처한 마이너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탈출하는 게 좀 더 극적이다. 그런 반전이 더 많은 쾌감을 준다. 그런 기술적인 이유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소수자들의 삶을 많이 알리고 싶은 이유도 있다.

 

신문사에 있다 보니까. 특히 진보적인 경향신문에서 근무하다보니 그런 사회의식이 글에 은연중에 스며들게 되는 것인가. 기자가 주인공으로 자주 나오는 것도 그렇고.
아니다. 신문사하고는 상관이 없다. 보통 추리소설은 형사나 기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 접근성이 높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추리를 해나가기가 쉽다. 

 

2013년에 협회 ‘이달의 편집상’을 사회면으로 받은 적이 있던데. 제목을 찾아보니 ‘삐뚤어진 가해자 당연시한 피해자 수수방관 교사들’이었다. 추리소설과 연관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추리소설을 쓰기 위해 사회면을 많이 짜는 편인가? 요즘은 주로 어떤 면을 맡고 있나.
하하. 그건 아니고. 지금은 스포츠경향에 파견근무중이다. 예전에는 사회면을 많이 짰다. 사회면을 좋아한다. 경찰이나 법조 기사 보고를 보면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종종 얻는다. 보고에는 기사화 하기는 어렵지만 읽을거리가 많기도 하고 그 세계에서 돌아가는 하찮은 이야기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는다. 지금 체육 면을 맡고 있는데 다음 작품으로 야구관련 소설을 고려하고 있다.

 

소설을 위해 직접 취재도 나가나?
아니다. 모든 걸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웃음) 아 그건 한다. 경찰청 취재는 안가지만 경찰을 따로 만나봐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조선족도 만나고 고려인도 만난다. 그러다보면 후원단체에 후원도 하게 되고.

 

영감을 준 추리작가는.
김성종 작가다. ‘최후의 증인’이란 작품을 좋아한다. 분단사회의 아픔을 녹여낸 추리소설이다. 중학교 때 읽었는데 추리소설도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고민을 담기도하고 역사적 아픔을 배경으로 쓸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커서 추리작가가 되면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불의를 못 참는 사회참여의 대한 의지가 어릴 때부터 있었네요.
아니다. 사소한 건이나 큰 건이나 다 잘 참는다. 하하.

 

작품 B파일로 2013년 한국 추리문학상 대상을 받으셨던데.  독자들이 액션 씬이 영화 ‘아저씨’처럼 좀 더 강렬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고 하던데.
하하. 그 당시에는 필력이 많이 부족해서. 지금 다시 쓴다면 강력한 액션 장면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로 만들자는 얘기는 없었나?
B컷과 B파일 모두 판권이 팔렸다. 하나는 제작이 엎어졌고 하나는 영화로 제작 중이다.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도 판권 협상 중이다. 예전에는 ‘얼씨구나’하고 좋아했겠지만 요즘은 조금 신중한 편이다. 가급적 영화화 될 만한 가능성이 높은 영화사 쪽에 팔고 싶다.

 

판권 값은 얼마? 보통 판권 가격대는?
밝히기가 곤란하지만 꽤 된다. 책이 나오면 모든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에서 관심을 가지는데 1년 정도 지나면 관심이 빠르게 식어버려 잘 팔리지 않는다.

 

동네 책방도 외부 강연도 많이 하던데.
가끔씩 있다. 많은 편은 아니다. 추리장르가 작가들이 많지 않아 강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편이다. 추리소설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애가 있는 부모들이 관심 있어 한다. 장르소설 글쓰기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없다. 관련 강연 활성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친한 선배 어깨 너머로 배우는 등 주먹구구 같은 도제식 시스템은 이제 탈피할 때가 됐지 않나 싶다.

 

작업할 때 편집자와의 갈등은.
출판사 편집자들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피드백을 많이 받고 요구하는 것도 웬만하면 들어준다. 장르소설이 재미가 있어야 하니 여러 사람이 미리 보고 그 반응을 살피면 좋다. 한번은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 아재개그를 넣었다가 젊은 여성 편집자에게 혼났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고. 편집기자 입장에서 판을 짜다가 ‘이런 부분은 이런 것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감이 있지 않나. 관련 기사들을 많이 읽으면 생기는 감이다. 출판사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플롯에서 변화를 줬으면 좋아질 부분을 감으로 안다. 편집자와 작가는 동업자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해외에서 번역된 책은, 외국인 팬은 없나.
아직 없지만 외국인 팬은 있다. 일본 삿포로에 사는 후지하라 토모요라는 40대 여성 독자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추리소설을 읽다가 나를 알게 됐다고 한다. 페이스북 친구도 맺고 한국 추리소설을 일본에 소개하기도 한다. 만약 일본에 출간하게 되면 이 친구가 번역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 


주중엔 편집기자와 주말엔 작가, 투잡을 뛰고 있는데 어려움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9살짜리 딸애와 노는 것도 조금 포기를 했다. 다른 취미활동을 맘껏 못하니까 가족들도 조금 불만이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노래교실을 다니고 싶은데 시간을 내는 게 힘들다. 그래도 내가 쓴 책이 실물로 모습을 드러내면 가족들이 함께 기뻐해준다.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딸애에겐  딸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어린이 추리소설을 써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체력을 보충하려면 배드민턴 등 활동적인 취미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걸 잘 못한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야구를 보는 것. 드라마도 안 본다. 예전엔 추리소설 읽고 쓰는 것이 취미활동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직업이 돼 버렸다. 취미와 직업의 차이는 말을 안하더라도. 하하. 

 

원고는 보통 언제 쓰나.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엔 당연히 못쓴다. 주말에 몰아서 쓰는 편이다. 보통 금요일 날 아침부터 달린다. 집사람이 출근하고 애가 없으니까 집중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시간이다. 평일엔 메모를 많이 활용한다.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둔다. 잠자리 들기 전에도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종종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두곤 한다. 메모한 글은 처음엔 하찮은데 그게 쌓이게 되면 엄청난 양이 된다. 이야기가 잘 안 뚫릴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추리소설의 주 독자층은?
보통 추리소설은 40~50대 남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의외로 20~30대 젊은 여성분들이 좋아한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출판시장 전체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활성화된 웹소설의 영향도 있나.
웹소설 영향보다 추리소설은 일본소설의 영향이 많다. 일본 소설에는 추리적 요소가 많다. 또한 일본 추리소설이 워낙 많이 읽히니까. 그 영향이 있다고 본다.

 

일본 추리소설은 어떤 걸 좋아하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제일 무난하게 추리소설의 재미를 주는 작가다. 대표작으로는 ‘용의자 엑스의 헌신’과 ‘백야행’ 등이 있다.

 

우리나라 추리소설 작가가 대충 몇 명 정도 되나.
100명은 안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재능 있는 분들이 많다. 추리작가는 수입의 한계가 있다 보니 대부분 직장을 다닌다. 전업 추리작가는 드물다. 전업 작가들도 방송대본이나 역사소설 대필 등 이것저것 다른 일을 많이 한다. 영화 쪽 강연도 많이 하는 편이고. 100% 추리소설만 쓰는 작가들은 없다고 봐야한다. 장편을 쓰는데 짧게 잡아도 꼬박 1년이 걸린다. 책이 안 팔려도 영화 판권으로 팔리면 괜찮은 편이다.

 

네이버에도 연작소설을 썼던데 .
네이버에 연작시리즈를 모아 책으로 낸 게  ‘탐정이 아닌 두남자의 밤’이다. 이 작품은 애정이 크다. ‘2016년 오늘의 작가상’ 후보 10명에 들었다. 작가상은 장강명 작가가 받았지만 장르소설로 본심에 오른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참, 장강명 작가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외국작가 중에는 누구에게 큰 영감을 받았나.
당연 셜록홈즈다. 어릴 때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작가로서 영향을 준 사람은 일본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다. 대표작은 ‘사라진 이틀’,‘64’ 기자 출신이면서 추리작가다. 경찰서 내부의 풍경이나 신문사 편집국 안의 모습을 리얼하게 잘 그려냈다. 창작활동 초기 배울게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클라이머즈 하이’다. 1985년 524명의 사상자를 낸 JAL 비행기 추락 사고를 바탕으로 저널리스트들의 숨 막히는 보도전쟁을 그렸다. 지방신문 편집국이 돌아가는 상황이 생생하게 보인다. 편집기자들에게 ‘강추’다. 그의 소설에 신문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사람 소설에 신문사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클라이머즈 하이와 함께 편집기자협회 회원들에게 휴가 때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한다면.
국내작가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판사로 재직하다가 최근에 변호사 개업을 한 도진기 씨의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근무하는 송시우 씨의 ‘달리는 조사관’을 추천한다. 읽어보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로서, 편집기자로서 앞으로의 꿈은.
작가로서의 꿈은 너무 늦게 시작해서 크게 돼야겠다는 건 한계가 있지만 영상화로 된 작품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두 번째는 영미권과 더불어 장르소설 양대 강국인 일본에 번역 작품을 하나 내보고 싶다. 편집기자로서의 꿈은 그냥 좋은 신문 만드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연말에 해외여행도 한 번 가고 싶고. 하하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야구 미스터리를 쓰고 있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야구와 추리소설을 묶어보려고 했는데 이번에 도전하게 됐다. 체육부 후배를 꼬드겨 많은 정보를 빼내고 있다. 작업 막바지라 요즘 많이 바쁘다. 야구 시즌이 끝나고 11월부터 2월까지 ‘스토브리그’에 관한 이야기다. 구단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뤘다. 11월 달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한턱 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