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사회: 안광열 협회 부회장
패널: 박준영 경인일보 차장, 박진규 매일신문 기자, 유미정 경향신문 기자, 윤은정 한국일보 기자, 최주흥 아주경제 기자 (가나다 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춘 편집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협회는 12월 6~13일 독일과 프랑스에서 진행된 한국편집상 해외시찰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좌담회를 열었다.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열정과 패기로 무장한 청춘 편집기자들의 좌담회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파리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사회: 편집기자라면 오자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 이런 실수를 하기 쉬운데 이와 관련한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진규: 제 사고담을 먼저 꺼내놓자니 너무 센 것 같아 걱정이다. 1면 톱기사에 ‘도지사’가 ‘도시자’로 잘못 나간 적이 있다. 저희도 봤고 교정부도 봤고 지면 최종회의하면서 각 데스크들이 들어와서 다 봤는데 아침에 신문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박준영: 부동산 관련 일명 ‘조지는’ 기사가 기획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뭔가에 홀렸었는지 부장판사의 성을 ‘개’로 달아서 나간 적이 있다. 원래는 후속보도가 계속 나가기로 했었는데 모든 지면 계획이 스톱됐던 적이 있다.
유미정: 기사를 오독해 제목을 잘못 달았던 적이 있다. 다음 날 데스크의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출근 날을 쉬는 날로 착각해서 출근하라고 연락한 줄 알았다.
최주흥: 날씨 제목 관련해서 실수했던 게 생각난다. 전국 흐림인데 ‘전극 흐림’으로 달아서 나갔던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는 후배가 홈페이지에 잘못 나간 것을 보여주면서 킥킥 웃었다. 자세히 보니 ‘전극 흐림’ 이었다. 후배는 내가 단 줄도 모르고 그걸 보여주고 킥킥 웃었던 것이었다.
윤은정: 나도 실수가 많은 편이다. 예전에 사람들 동정이나 부음 같은 알림 기사에서 산 사람을 죽인 아찔한 실수도 있었다. 다음 날 취재 선배의 연락을 받고 울면서 회사에 갔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사고는 누구나 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걸 빨리 잊고 털어내는 것 같다.
사회: 편집기자라면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항상 날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유행어나 신조어를 활용한 제목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박진규: ‘나 혼자 산다’를 패러디해 ‘옆방에 산다’라는 제목으로 이달의 편집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에도 적었지만 아내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괜한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윤은정: 김준현의 ‘고뤠~’가 한창 유행일 때였다. 고래 기사가 나와서 이를 패러디해 ‘고뤠~’를 활용한 가제목을 올려뒀었다. 이후 자기검열을 통해 정돈된 제목으로 데스킹 받았는데 “아까 그 제목이 훨씬 낫던데?” 하면서 고뤠를 살리자고 했다. 결국 가제목으로 달았던 고뤠 제목이 통과됐다.
최주흥: 큰 상을 받아서인지 최근에는 유행어나 신조어를 많이 용인해주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머 이건 꼭 사야해”라는 문장을 활용해 제목을 달았는데 국장이 바꾸지는 않고 조심스럽게 말씀하더라. “그런데, 이 제목 문제는 없겠지?”
박준영: 입사 초기 연예면을 짤 때 유행어를 많이 응용하려고 했었다. 그 후 한동안 유행어를 활용한 제목은 잘 안 쓰다가 이번에 운이 좋아서 한국 편집상을 받게 됐다. 지금 데스크는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최대한 수용하고 잘 다듬어 주는 편이다.
유미정: ‘인싸’와 같은 줄임말을 쓸 때는 고민이 된다. 과연 이런 표현들을 독자들이 알 수 있을까. 잘 활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쓰고는 싶은데 이걸 써도 될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윤은정: 나는 좀 지르는 편이다. 대장을 제출하면서 “요즘 이런 말들을 많이 쓰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할까”와 같이 데스크를 설득하기 위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사회: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다. ‘인싸’라는 단어를 넣어 만든 제목으로 대장을 가져가면 데스크가 받아줄 것 같나.
박진규: ‘인싸’ 아래에다 꺾쇠를 하나 넣어 풀어써줘야 할 것 같다. 이는 주 독자층과 관련이 있다. 시니어들이 많이 보는 신문에 ‘JMT(존맛탱)’과 같은 유행어나 은어를 쓴다면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많지 않을 것 같다. 편집기자 스스로 거름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최주흥: 종합면은 조금 엄격하지만 뒤에 오는 면들은 많이 포용해주는 편이다. 가끔 시원하게 지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자기만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제하게 될 때도 있다.
윤은정: 구독자가 젊은 층인 신문사는 없을 것 같다. 유행어를 어떻게 활용해서 공감대를 얻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어떤 지면에, 어떤 기사에 적확하게 쓰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사회: 편집기자 고령화 시대에 젊은 편집기자를 찾기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그만큼 편집기자라는 직업이 흔치 않을뿐더러 쉽지도 않다. 편집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고 후회한 적이 있나? 혹은 반대로 이 직업은 천직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지.
윤은정: 나는 비판적이고 예리한 면이 있다. 똑같은 현상을 봐도 비판적인 것을 하나씩 끄집어내는 장점 아닌 단점이 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내가 천직을 만났다고 얘기를 하는데 후회는 없는 것 같다.
최주흥: 친구들에게 편집기자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가 슬프다. 내가 짠 지면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주흥아 여기 바이라인에 왜 네 이름은 없어?”라는 반응이 나오면 편집기자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유미정: 편집을 시작하고 후회하진 않았다. 다만 편집기자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간다고 느꼈을 때, 또 그와 관련한 말을 선배에게 들었을 땐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 이전과 다른 편집기자의 위상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편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박준영: 아내가 편집기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직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시작하게 됐다. 실제 현장에 와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하게 됐다.
박진규: 나는 학보사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학보를 만들던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매일신문이었다. 학보 만들 때도 편집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라디오작가를 꿈꾸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편집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저도 가족이나 천척들에게 편집기자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공부를 잘해서 편집기자를 한다.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쐬면서 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 나가서 뛰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렸다.
최주흥: 나는 취재기자 시험에 응시해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상태에서 편집기자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도 학보사에서 활동을 하면서 편집에 대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취재기자 대신 편집기자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유미정: 나는 사실 미술을 전공했다. 도자기를 빚는 공예와 관련한 일을 인턴으로 했었는데 몸을 쓰는 일이 적성에 맞질 않았다. 잡지 편집에 뜻이 있어서 간 학원에서 신문 편집을 더 배우게 됐다.
윤은정: 순환 배치를 받았는데 편집기자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고 편집을 시작하게 됐다. 중간에 취재도 해봤지만 편집의 더 오랜 경력을 살려 이직까지 하게 됐다. 이직 당시 주변에서 취재를 포기하는 건 아깝다는 말도 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사 작성은 AI도 대체가 가능하다지만 편집은 나만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회: AI가 이미 많은 직업을 대체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사람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집도 예외가 아니다. AI가 편집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박준영: 지면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예술성도 가미가 돼야 하는데 요즘 AI의 기술을 볼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박진규: 병원에서 활용하고 있는 왓슨이 좋은 예일 것 같다. 왓슨은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기 전, 해당 수술에 관한 정보와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우리도 AI에게 도움을 받거나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최주흥: AI를 도입하기 위해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기사 작성이나 제목을 뽑을 때 한국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입력해야 할 변수가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사회: 조금 아까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젊은 편집기자, 특히 편집을 새로 시작하려는 수습기자를 찾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에게 편집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 어떠한 점을 어필할 수 있나.
박진규: 편집은 차가운 지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의사는 아니지만 죽은 지면도 제목으로 살려낼 수 있다.
최주흥: 해석 능력이 부여된 다는 것은 상당히 큰 메리트인 것 같다. 르포나 특집 기사도 편집기자가 다시 읽고 새롭게 해석해서 편집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빈 틈’이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박준영: 출근 시간이 상대적으로 늦다는 것도 큰 매력인 것 같다. 그 날 받은 스트레스는 강판과 함께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다.
유미정: 판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이 아직 편집기자에게 있다.
사회: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 아무래도 디지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기회가 된다면 디지털 영역에 도전해 볼 의향이 있는지.
유미정: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기회가 돼서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편집기자들이 지금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여서 디지털의 새 영역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진규: 디지털로 가는 것에 대해 좌천이 아닌, 편집기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부서로 이동해서 좀 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최주흥: 디지털은 클릭수 위주로 평가 받는 것이 조금 아쉽다. 신문 편집이 갖고 있는 위상이나 신뢰도 같은 것들을 디지털 편집으로 옮기기 위해 고민해 봐야할 것같다.
박준영: 막상 옮기게 된다면 무슨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주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한 롤모델이 없어 쉽지 않을 것 같다.
윤은정: 디지털 부서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했다. 신문 편집과 온라인 편집은 큰 틀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좋은 사진을 고르고 제목을 뽑고 알맞게 배치를 하는 일은 문법은 약간 다르겠지만 온라인에서도 큰 방향은 똑같다. 다만, 온라인 편집을 할 땐 유통이라는 측면도 신경을 써야했다. 편집기자의 손을 거친 온라인 제목은 확실히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편집기자의 기본적인 역할을 잘 할 수 있다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