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좌충우돌 편집일기
광주일보 유제관 부장


#5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어디를 때릴까?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들이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회의를 했다. 부산은 도시 규모가 너무 크고 마산 목포는 너무 작다. 대전은 서울과 가까워 통제가 안 되고…. 광주. 저항의 도시이자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엮을 수 있는 곳. 타깃으로 적당했다.” 전 미군부대 정보요원 김용장 씨와 전 보안사 505보안대 특명부장 허장환 씨가 지난 5월 13일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며 국회에서 한 증언 내용이다. 한 도시를 치안부재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이를 해결해 ‘국난을 극복한 전두환 장군’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타 지역민에겐 공포감과 함께 적당히 겁도 주고. 1980년 5월. 불행(?)하게도 ‘전두환의 타깃’ 광주에 살고 있었다. 18일 공수부대가 ‘화려한 휴가’라는 살인진압 작전을 펼칠 때도,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할 때도 현장에 있었다. 27일 그 긴~ 새벽.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총소리는 39년이 지난 지금도 이명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5월 그 날이 다시 왔다.


#올해는 5월 18일자 신문이 없다
5·18 행사의 중심은 17일 전야제와 18일 기념식. 광주지역의 신문들이 1년 중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날이다. 그런데 금, 토 휴무일이어서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다. 낭패다.  ‘5·18 편집’은 사실상 17일자밖에 없다. 데스크회의를 거쳐 ‘5·18 꼬마 상주’ 인터뷰 기사를 1면에 넣기로 했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5·18의 비극을 알린 주인공.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조천호 씨를 통해 39년이 지난 지금도 ‘발포명령 全모(씨)’를 밝혀내지 못하고 진상규명 작업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인터뷰를 끝내 거절했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는 뜻과 함께. 레이아웃에서 제목까지 준비해 둔 편집계획은 결국 지면에 반영되지 못했다.


#광고 밀어낸 자리로 날아온 야구공
편집기자의 꿈은 머릿속 구상을 온전하게 지면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마음먹고 시도하는 편집엔 이를 가로막는 벽들도 많다. 광고가 3분의 1을 뚝 떼어가고,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받기 어려우며, 주위의 참견도 많다. 무엇보다 속보로 들어오는 기사는 최대의 적이다. 17일자 1면 광고를 어렵게 없앴다. 사진을 고르고 제목을 다듬고 있는데 KIA 김기태 감독이 사퇴한다는 속보가 떴다. 중요한 뉴스지만 그냥 무시하고 스포츠 면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편집국에 야구팬들이 왜 이리 많은지. 프로야구와 5·18과 목포의 눈물…. 모두가 한마디씩 하니 편집자가 양보할 수밖에. 그래. 다 받아주자. 김기태도 이재명도…. 5·18 당시 진압군의 만행을 담은 흑백사진을 여러 장 배치하려던 레이아웃은 포기해야 했다. 


#운율을 살릴까 의미를 찾을까
올해 5·18 최대 현안은 진상규명위원회 출범과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이다. 그 날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해 보수 세력의 왜곡과 망언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진실규명’ ‘역사왜곡 방지’ 두 개의 화두를 들고 고민했다. 제목에 단어의 의미를 살릴 것인가 운율을 살릴 것인가. 일단 앞부분은 ‘못 밝힌 진실’로 하고 이에 상응하는 문장을 ‘못 박힌 망언’으로 할까 ‘못 끊은 왜곡’으로 할까 편집부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못 박힌’은 ‘못 밝힌’과 어울리지만 의미 전달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왜곡’이 ‘망언’보다 폭넓은 뜻을 함유하고 있어 선택했다. 그렇게 결정한 제목. 5·18 39주년 못 밝힌 ‘진실’…못 끊은 ‘왜곡’. 편집을 끝내고 보니 계획은 거창 했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가슴에 ‘확인 사살’ 얼굴엔 ‘살인 미소’
5·18 편집은 아쉽게도 이렇게 끝나나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전남대 김희송 교수가 ‘5월의 진실을 찾아서’라는 시리즈를 기고하고  있는데 국방부 자료 문서를 분석해 보니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 과정에서 계엄군이 시민군들을 총으로 확인사살 했다는 내용이다. 의료진 검시 결과 사망자들 가슴 똑같은 위치에 총탄자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5·18 기록영상이 생각났다. 27일 아침 도청에서 시민군들을 집단 학살한 후 소준열 계엄분소장과 박준병 20사단장이 활짝 웃으며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이들은 시민군들의 가슴에 ‘확인 사살’을 하고 얼굴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살인 미소’였다. 천인공노할 사진 위에 제목을 얹었다. 가슴에 ‘확인 사살’ 얼굴엔 ‘살인 미소’. 올해 5·18 편집은 이 제목 하나로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