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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숙 기자의 교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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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未亡人)’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망인은 죽은 사람을 가리키고, 여기에 미(未)를 그대로 붙여 ‘미처 죽지 못한,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 된다. 특이한 점은 글자에선 남녀 구별이 없는데 여자에게만 쓰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의 연유를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 등에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편과 사별한 여인이 남들에게 자신을 말할 때 스스로를 낮춰 이르던 말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남편을 여읜 여자’가 돼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는 군인인 남편을 잃은 부인들의 모임에 대다수 쓰이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사대부집에서 남편이 죽으면 그 부인은 죄인이라도 된 듯해 ‘미처 따라 죽지 못하고 살아 있다’란 의미에서 미망인이라 했지만, 2019년의 지금으로선 현실감이 떨어지는 고어다. 한술 더 떠 본인이 낮추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까지 죽은 이의 살아 있는 부인을 두고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운동 단체와 우리말 운동가들이 버려야 할 우리말 1순위로 지목했다. 그런데 아직도 매체에선 곧잘 사용한다.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자’를 이르는 우리말로는 ‘과부(寡婦)’도 있다. ‘과(寡)’는 ‘적다, 부족하다’는 의미여서 과부의 글자 그대로 뜻은 ‘부족한 부인’이 된다. 높임말은 ‘과부댁’이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등 우리말에 과부와 관련된 속담도 수십 개에 이른다. 그만큼 과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였지만 요즘은 이것도 매체에서 잘 쓰지 않는다. 구시대적인 느낌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인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망인은 ‘근거 없는 괜찮음’으로 계속 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인의 부인을 인터뷰한 한 매체의 기사는 당사자는 그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필자가 무심코 사용했고, 편집기자가 또 큰 제목으로 그대로 붙였다. 큰 실례다. 이럴 때 그냥 ‘부인’을 쓰는 것을 권고하지만 말 자체에 남편을 잃었다는 뜻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고인의 부인 OOO씨’ 식으로 권유하고 있다. 길어져도, 느낌이 안 살아도 할 수 없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니라 2019년이다.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