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좌충우돌 편집일기 인천일보 김미나 기자

북미 회담에 뒤로 치워놨는데
인천 독립운동 영웅들 다시 부활
“이왕 쓸 거면 키우자” 전화위복


2월 26일. 사진부에서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기록된 인천 인물 15명의 이름과 14명의 사진을 건넸다. 1명은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3월 1일자 1면 사진 후보라는데, 사실 북미정상회담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었기 때문에 잠깐 훑어보고 한쪽에 치워(?)놓았다.
2월 27일.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 시작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두 정상의 밝은 표정이 담긴 사진과 희망찬 멘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애국지사들의 사진은 더욱 잊혀져갔다.
3월 1일자 편집회의 결과, ‘하노이선언’이 나올 경우 인천경기 합판으로 1면에 사진을 크게 쓰고 2~5면까지 세부내용을 담기로 했다.
1면 제목은 뭐가 좋을까. 설렘과 긴장으로 고민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점점 불안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방 싸서 집에 갔대” 누군가 외쳤다. 헐! 비핵화는? 종전은?
실망할 새도 없었다. 다시 시작된 편집회의, 1면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북미회담은 단신으로, 주인공은 3·1운동이 됐다.
이유를 꼽자면 세가지. ①북미정상회담 기사는 전날도 나갔고 ②인터넷으로 미리 접하는 독자가 태반일 것이고 ③다른 모든 신문이 ̔노딜’을 쓰겠지.
인천일보에서는 인천의 역사적 인물들을 조명하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왕 쓸 거면 ‘빵’ 키워보자. 머릿속에 잊혀진 ‘후보’ 14장의 사진이 스쳤다. 사진 위에 숫자 100을 올려보자. 그래픽 기자를 찾았다.
“조금 지저분할 것 같지 않아?”
“낡은 사진이라 얼굴이 다 가려질 것 같아요” “사진으로 100을 만들면?”
“그러기엔 사진 수가 너무 적은데요”
2가지 아이디어를 편집부장(김정원 부장)에게 들이밀었다. 편집부장과 사진부장의 선택은 달랐다. 아니 편집부장의 선택'만' 달랐다. 편집기자인 나와 그래픽기자, 사진부장 3대1. 편집부장의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으나 사실 투표 결과는 의미 없었다. 우리의 '짱'은 편집부장이고 그가 괜한 지시를 할 리 없으니까.
결과물이 나왔을 때 3대 1이었던 스코어는 0대 4로 변했다. 정상회담도 뒤집힌 마당에 이 정도는 뭐 귀여운 변심 아닌가?
3‧1운동 100주년 지면 ‘고맙습니다, 오늘을 주셔서’는 우리 민족이 겪은 고초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 끝에 태어났다. 매일이 선택의 연속인 편집기자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