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지역신문 편집부의 하소연
 인원은 줄고 있는데 충원 안돼
 점점 ‘슈퍼맨’을 강요하는 회사
“동료들과 티타임 여유마저 실종”
 퇴근 앞당겼다는데 ‘남의 얘기’

지역신문 ㄱ일보 A기자는 오후 1시경 출근해서 타 신문을 스크랩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출근하기에는 시간이 약간 애매해 12시쯤 아침 겸 점심 ‘아점’을 먹고 출근하는 것이 생활 패턴이 됐다.
타 신문의 편집을 관심 있게 살펴보던 중 기사가 하나 도착했다. A기자가 오늘 맡은 지면은 간지인 문화면과 메트로, 그리고 경제면까지 세 판이다. 중앙지 몇 곳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업무환경이 조금 나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B기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오히려 인원은 계속 줄고 있는데 충원이 되지 않아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 보통 이틀 건너 세 판, 연차나 휴가자가 있을 땐 하루 기본 세 판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
허겁지겁 간지 두 판을 짜고 나니 저녁식사 시간. 하루 중 유일하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내일 짜야 하는 특집 생각에 밥이 잘 넘어가질 않는다.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업무에 짓눌린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말을 걸기도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편집부가 점점 조용해지는 것 같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선배들과 커피를 마시며 편집이나 부서 얘기를 나눌 여유가 있었다. 영화나 휴가 얘기를 하고, 때로는 데스크에 대한 뒷담화(?)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업무가 많아지면서 부서원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사라진 것 같다. 얼마 전 한 선배가 한 말이 뇌리에 남았다. “편집부가 너무 삭막해지는 것 같아…”
다른 지역신문 ㄴ일보 B기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업무 강도가 둘째라면 서럽다는 ㄴ일보에서 수년째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지만 가끔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주당 근무시간을 따지면 40여 시간, 그래서 주 52시간 근무제는 영향이 없지만 B기자의 고민은 업무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는 것이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자주 술을 마시다 보니 볼록해진 배도 신경 쓰인다. 최근 젊은 기자들 중심으로 이직이나 결원이 자주 생겼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는 아직도 빈 책상으로 남아있다. 그들이 하던 업무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자들에게 N분의 1로 돌아왔다.
회사는 점점 ‘슈퍼맨’을 강요하고 있다. 편집에 대한 열정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한 B기자는 이제 못하는 일이 없다. 프린터 토너 교체부터 편집 프로그램 점검, 포토샵은 기본으로 다룰 줄 알고 디테일한 기능까지 마스터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잊은 지 오래다. B기자는 친구들에게 ‘얼굴 보기 어려운 녀석’이 됐다. 퇴근하고 약속 장소에 달려가 봤자 이미 많은 친구들이 자리를 떴거나 B기자만 모르는 이야기들을 취중에 나누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보다 부서 동료들과의 자리가 편해졌다. 하지만 B기자는 편집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지역의 ㄷ신문 C차장은 2년 전 도입한 근무시간 변화 이후 외부의 저녁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오후 8~9시에 일이 끝나기 예사여서 약속은 아예 꿈도 못 꿨다. 하지만 근무체제 개편(오전 10시 출근~오후 7시 퇴근) 이후에는 간혹 저녁 모임 약속을 잡는 것도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야간운동을 위해 피트니스클럽도 등록할 생각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 사정이 나아졌을 뿐 온전히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기에 무리가 있다. 기사 마감과 각종 면 수정 등으로 인해 저녁 7시 칼퇴근은 사실상 어려운데다, 늦게까지 남아 마무리를 해야 하는 ‘늦조’가 돌아오거나 당직을 서야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엿새간 나눠 할 일을 닷새 만에 ‘압축근무’ 과부하 불만도


점점 확산되는 금요일 휴무
서울신문 평일 4P가량 늘리고
국민일보 토요 매거진 사전제작
금요일에 쉬고 일요 출근 굳어져


노동시간 단축이 신문시장 자체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서울신문은 7월부터 토요일자를 발행하지 않고 있다. 종합일간지 가운데 주 52시간제 대책으로 토요일자를 폐지한 첫 사례다. 대신 28~32면이던 평일 지면을 32~36면까지 늘렸다. 금요일자는 아예 40면으로 대폭 증면했다.
국민일보는 주5일제를 위해 토요일자를 매거진 형태로 사전제작해 토요일에 배달한다. 인터넷기사를 출고하는 일부 취재기자만 제외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전면 휴무다.
경향신문은 토요일자 지면을 4개 면 감면했다.
중앙일보는 토요일자를 중앙선데이로 대체했다. 일요일에 발행하던 중앙선데이를 토요일로 옮기고, 중앙일보 토요일자는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있다. 주5일제 시행을 위한 조치다.
서울신문은 오후 5시55분에 “일을 마무리하기 바란다”는 독려방송도 한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편집국은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면 다음날 출근시간을 늦추는 시차출근제도 도입했다.
서울신문 한 기자는 “주중엔 너무 고되지만 달력을 펴놓고 다음 휴일엔 뭘 할까 고민할 땐 잠시 일상을 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혼과 기혼 기자들의 차이가 컸다. 워킹맘인 한 기자는 “가족과 다른 시간표로 사는 것이 어렵다”면서 “특히 일요일마다 애를 집에 두고 출근하기가 미안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편집부의 업무 강도는 오히려 세졌다는 평가다. 토요일자를 없앤 대신 평일 지면을 증면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자는 “돌아서면 새로운 판이 기다리고 있다. 숨이 찬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노보에 따르면 “토요일자를 폐지하며 대체 도입한 섹션 탓에 평일 노동강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는 토요일자가 없어졌는데 오히려 집에 일거리를 싸들고 가는 날은 늘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며 연쇄적으로 편집기자들도 금요일 휴식, 일요일 출근의 근무패턴이 굳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휴일 근무수당이 줄어드는 점도 큰 변화다. 다만 시행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국민일보도 사정은 비슷하다. 금요일 휴무 대신 토요일자를 주중에 사전제작 하게 되면서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특히 편집부는 6일치 신문을 5일 만에 제작해야 하는 탓에 피로도와 스트레스는 훨씬 심하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한 기자는 “토요판을 사전제작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평일 마감 후 가욋일이 생겼다”며 “금요일에 쉬기는 하지만 이전과 같이 일요일에는 쉬지 못한다. 법 취지가 일과 삶의 균형인데 아이들이 쉬는 날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아쉬움은 똑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는 발행부수 현실화를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민일보는 현재 18만부 가량을 인쇄하고 있으나 8월부터는 10만부, 이후에는 8만부까지 단계적으로 제작 물량을 감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거품 부수’를 걷어내고 제작 비용의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측은 "주 52시간 근무와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일간지들의 토요일자 발행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지역에서는 이미 토요일자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토요일자 배달과 광고 상황에 따라 토요일자 폐지는 신문시장 전체로 급격히 확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내와 낮술·영화·저녁식사 시간 여유는 생겼지만 비용이…


금·토 휴무 K기자의 두 달
하는 일은 늘었는데 수당은 싹둑
통장에 들어오는 돈 현격히 줄어
작은 딸 학원비가 고스란히 증발


A신문사 편집기자 K는 매주 금요일 휴무다. 다른 부서원들도 마찬가지다. 역시 금요일인 8월 17일, K는 방학 중인 딸과 함께 전철에 올랐다. 누군가 다가왔다.
“형, 안녕하세요.”
B신문 편집기자 L이었다. 그는 K를 ‘선배’ 대신 ‘형’이라고 부른다.
“회사, 안 가시나 봐요.”
“금요일에는 항상 쉬어.”
“그럼 토요일자 신문은 누가 만드나요?”
“토요일자 안 만든 지 좀 됐어.”
주 52시간 근무 시행 두 달. 어느 신문사는 토요일자를 아예 없앴고, 어느 신문사는 편집부서 내 근무 조정으로 격주 혹은 3주에 1회 금요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으며, 어느 신문사는 아예 인사 발령을 내 토요일자 별도 제작을 하게 한다. 
L은 궁금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연이틀 쉬면… 뭐 하세요?”
40대 초·중반 남성을 기준으로 하면, ①금요일에는 아내 대신 아이들 챙겨서 학교 보낸 뒤  아내와 둘이 낮술을 마실 수 있을 테고 ②토요일에는 소싯적부터 톰 크루즈 팬인 아내, 액션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아이들과 미션임파서블 폴아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③그리고 가족이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④또한 금요일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1박2일의 캠핑을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⑤아니면 집 근처 시원한 서점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⑥미래를 위해 주말을 이용, 각종 기술을 익힐 수도 있겠다.
K는 ①②③의 패턴을 몇 번 해보니,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감을 절감했다. ④는 캠핑 장비 설치와 철거 등 각종 뒤치다꺼리에 1박2일 중의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했다. ‘진학’과 ‘가족 레저’ 사이엔 태평양만큼 큰 괴리가 있었다. ⑤는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한 종목이다. 서점에서 마련해 놓은 자리엔, 빈 곳이 없었다. ⑥은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참에 몸뚱이와 신발만 있으면 되는 등산을 해볼까 했는데, 7월과 8월의 폭염은 그를 집에 붙들어 놨다.
L은 더 궁금했다.
“그럼 야근은요?”
“원래 밤 11시까지 남았는데 주52시간 하면서부터 가끔 돌아가면서 9시에 조퇴해. 대신 조금 늦게 출근해”
오후 9시면 취침 전까지 무엇인가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①저녁 모임에 늦게 합류할 수 있고 ②극장에서 하루의 마지막 상영작을 볼 수 있으며 ③카페에서 조금의 시간이나마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④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고 ⑤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K는 지난 두 달간 ①만 몇 번 해봤다. ②③④⑤를 실행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시간의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였을 게다. ①이라고 해봤자 사적(私的)인 만남이 아니라 사적(社的)인 모임이 대부분이었다. 본인의 의지로 보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편집기자의 질기고 강한 업무적 고뇌 뒤 찾아오는 급성 심신 미약의, 아노미의, 알코올 희구(希求)의 상태를 경험하지 않는가.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구도자의 마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K는 L의 일상이 궁금했다.
“저녁 약속은 잡나?”
“거의 못 잡죠. 시간이 애매해서요.”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K는 차라리 쉬는 금요일에 저녁 약속을 잡는다. 사내외 업무 관련자들과 금요일 저녁에 만나는데,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넌…(출근 중임을 눈치 채고도) 어디 가니?”
예상대로 L은 출근 중이라고 했다.
L의 회사는 300인 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주52시간은 아직 적용받지 않는다고 했다. 일주일에 엿새를 출근한다고 했다.
“저희 회사 인원이 298명이라는군요.”
대화는 돈 이야기로 넘어갔다.
“수당 좀 나오겠다.”
“그렇죠…뭐. 형은요?”
“금요일을 쉬니 대휴수당도 줄었다.”
이런 논리도 있다. 야근비도 대휴수당도 ‘줄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야근을 줄여야 했고 주5일제도 꼬박 지켜야만 했기에, 수당은 줄은 게 아니라 원상복귀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쨌든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적어도 올해 상반기보다 현격하게 줄었다. 작은 딸 학원비가 고스란히 사라졌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정부의 말대로라면 ‘저녁 있는 삶’을 표방한다. 동시에 업무시간을 줄여 그 감소분을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두 달, K도 L도 아직 전자나 후자나 체감을 못하고 있다.
L은 K와 헤어지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형, 술 한잔해요. 지금 날 잡을까요?”
K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너, 금요일은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