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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강보한 기자의
“이 식당 안 가봤죠”


 

 이태원 대한각 ‘원족’

한국음식은 한마디로 단백질이 적고 나트륨이 많은 식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기 없이 10종의 나물과 소금국, 흰쌀밥을 곁들인 한상차림은 눈이 호화로운 코스요리다. 하지만 글로벌 트렌드와는 이질적이다.
군복무 당시 행정보급관이 “오늘 메뉴는 뭐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었다.
“금일 점심은 수수밥, 미역국, 취나물 된장무침, 김, 무채볶음…” 순간 행정보급관님이 말을 끊었습니다. “마! 메인이 뭐냐고.”
그 순간 내 머리에는 달마대사의 보리수 같은 깨달음이 스쳐지나갔다. ‘오늘 저녁은 제육’일뿐, 나머지는 사족인 것이다.
22년 한식을 먹으며 밥이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반찬과 국의 색, 향, 맛, 정성의 조화에서 오는 시너지라고 믿었다. 알고보니 밥은 단순한 음식이었다. 그때부터 세계인의 밥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태원에 있는 중국집 대한각(大漢閣)에서는 ‘원래’의 돼지족발을 맛볼 수 있다. ‘원족’은 한약재와 돼지족발을 오랫동안 통째로 졸여서 만든 요리다. 중의학을 전공했다는 사장 부부는 약효가 있다고 장담한다.
‘원족’은 흔히 쓰이는 발목이 아닌 정강이 부위를 요리한다. 주문하면 솥에서 갓 꺼낸 따끈따끈한 정강이 한 덩어리를 쟁반에 가져온다. 원시인들이 먹는 만화고기처럼 생겼다. 사장님이 손님들의 눈앞에서 다리뼈와 살을 눈녹듯이 분리한다. 숙련된 칼질 덕에 살결이 상하지 않는다. 이 뼈와 살을 분리하는 과정은 원족 맛의 7할 정도를 좌우한다. 칼날 끝에 힘이 실린 것은 아니지만 세심하고 숙련된 집중력으로 고깃결이 잘린다. 한국 족발의 식감은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럽다. 바깥층의 콜라겐이 묵처럼 굳기 때문이다. 원족의 식감은 겉은 부드럽고 속은 말랑말랑하다. 씹는다기보다 솜사탕처럼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에 가까운 식감이다.
미식의 즐거움은 먹기 전에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기 전부터 시작한다. 콜라겐 안쪽 따끈한 속살이 부드럽게 뼈에서 벗겨지고, 팔각, 정향, 회향, 커민이 완벽하게 조합된 향기가 코끝을 감돈다.
슈크림보다 부드러운 고기를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으면 돼지고기에 대한 중국인의 특출난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 소와 양의 한자는 하나뿐이지만 돼지는 해, 저, 시, 돈 네 종류다. 고기 육(肉)은 돼지고기만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한자가 생길 때부터 소고기는 우육, 양고기는 양육이었고 돼지고기는 저육이 아니라 육(肉)이었다. 아주 오래전 소고기와 양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어서 요리의 식재료로는 질이 좋지 않았다. 소와 양은 오랜시간 품종개량을 거치고 나서야 오늘날 먹는 육종이 됐다.
‘원족’은 옛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한 수천년의 경험치가 들어있는 음식이다. 콜라겐과 야들야들한 지방, 매끄러운 육질의 살코기가 3층을 이룬 족발은 제한된 재료로 연주한 최고의 하모니였다.
반면에 요즘 한국족발은 팔각을 넣지 않는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 족발에서는 연하게나마 팔각향이 났다. 팔각향은 원족이 한국화되면서 화석처럼 남은 흔적이다. 족발을 삶을때는 검은 색을 강조하기 위해서 카라멜을 첨가한다. 검은색 족발이 맛있어보인다는 선입견도 간장 대신에 노두유를 썼던 원족의 흔적이다.
한국족발은 중국의 족발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탄생하지 않았다. 수출하고 남아 버려진 발목부위를 썼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카라멜을 썼고, 양을 부풀리기 위해서 뼈와 연골을 많이 넣는 등 시대적 상황이 작용한 요리다. 족발요리의 '원래' 모습을 맛보는 것도 한국요리의 발전에 필요하지 않을까?